"AI가 내 일자리를 가져갈까?" 생성형 AI가 화제가 된 뒤로 가장 자주 들리는 질문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는 한 가지 전제가 숨어 있습니다. 일자리를 하나의 덩어리로 보고, 그 덩어리가 통째로 사라지느냐 남느냐를 묻는다는 점이죠. 2023년 3월 오픈AI(OpenAI) 연구자 세 명과 펜실베이니아대학교의 대니얼 록(Daniel Rock)이 함께 공개한 논문 「GPTs are GPTs」는 이 전제를 바꿔서 질문을 다시 던졌습니다. 직업을 통째로 보지 말고, 직업을 이루는 업무 하나하나를 들여다보자는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이 논문이 무엇을 어떻게 쟀는지, 자주 인용되는 "미국 근로자 80%"라는 숫자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 그리고 결과를 읽을 때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직업이 아니라 업무를 셉니다
하나의 직업은 생각보다 많은 업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무직 한 사람의 하루를 쪼개 보면 이메일에 답하고, 회의 내용을 정리하고, 숫자를 맞춰 보고, 거래처와 통화하고, 서류를 들고 다른 부서를 찾아가는 일이 섞여 있습니다. 이 중 어떤 일은 글을 다루는 일이고, 어떤 일은 사람을 직접 만나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이 직업이 AI로 대체될까?"라고 물으면 답이 뭉뚱그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연구진은 미국의 직업 정보 데이터베이스인 오넷(O*NET)을 썼습니다. 오넷에는 직업마다 그 직업에서 실제로 하는 업무가 문장 단위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연구진은 이 업무 하나하나에 대해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쓰면 이 일을 훨씬 빨리 끝낼 수 있는가"를 따졌고, 그 결과를 다시 직업 단위로 모았습니다. 앞선 연구들에서도 이런 업무 단위 접근을 쓴 경우가 있었는데, 공통적으로 발견된 사실이 있습니다. 한 직업 안에서도 AI의 영향을 받는 업무와 받지 않는 업무가 섞여 있어서, AI가 거의 모든 일을 대신할 수 있는 직업은 찾기 드물다는 것이죠.
'노출'이라는 말의 정확한 뜻
이 논문의 핵심 개념은 '노출(exposure)'입니다. 어떤 업무가 노출되었다는 것은 LLM이나 LLM을 바탕으로 만든 도구를 쓰면, 같은 품질을 유지하면서 그 업무에 드는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논문은 노출을 '잠재적인 경제적 영향'을 대신 보여 주는 지표로 정의하면서, 그 영향이 사람의 일을 돕는 쪽인지 대신하는 쪽인지는 구분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힙니다. 다시 말해 노출도가 높다는 말은 "그 일이 사라진다"가 아니라 "그 일의 방식이 바뀔 여지가 크다"에 가깝습니다.
업무마다 노출 여부를 판단한 것은 사람 평가자와 GPT-4였습니다. 연구진은 판단 기준표(루브릭)를 만들고, 사람에게도 GPT-4에게도 같은 기준으로 업무를 분류하게 했습니다. 업무 단위로 모아 보니 사람의 판단과 GPT-4의 판단이 비슷한 수준으로 일치했다고 합니다. AI의 영향을 재는 데 AI를 측정 도구로 쓴 셈인데, 연구진은 이것 자체를 이 논문의 기여 가운데 하나로 꼽습니다.
또 한 가지 짚어 둘 점이 있습니다. 논문은 이런 기술이 언제, 얼마나 빨리 도입될지는 예측하지 않는다고 적었습니다. 여기서 잰 것은 기술적으로 가능한 정도이고, 실제로 생산성이 오르거나 자동화가 일어나는지는 사회적·경제적·제도적 요인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숫자로 본 결과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결과는 이렇습니다. 미국 근로자의 약 80%는 업무의 최소 10%가 LLM 도입의 영향을 받을 수 있고, 약 19%는 업무의 절반 이상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80%의 일자리"가 아니라 "80%의 근로자가 자기 업무 중 최소 10%"라는 점입니다. 열 가지 일 중 한 가지라도 AI로 빨라질 수 있는 사람이 열 명 중 여덟 명 정도라는 이야기로 읽는 편이 정확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LLM을 '그 자체로만' 볼 때와 '그 위에 만든 도구까지' 볼 때의 차이입니다. 사람 평가자 기준으로, 지금의 언어·코드 능력만 놓고 보면 업무의 절반 이상이 노출된 근로자는 3%에 그쳤습니다. 그런데 다른 생성형 AI와 보완 기술까지 더하면 이 비율이 최대 49%까지 올라갑니다.
업무 전체로 따져 봐도 비슷한 그림이 나옵니다. LLM만 쓸 수 있을 때는 미국 전체 업무의 약 15%를 같은 품질로 훨씬 빨리 끝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LLM 위에 만든 소프트웨어와 도구까지 포함하면 그 몫이 47~56%로 커집니다. 모델 자체보다 모델을 일에 끼워 넣는 도구가 경제적 영향을 키우는 열쇠라는 뜻입니다.

연봉이 높을수록 더 많이 닿습니다
이전의 자동화 연구에서는 반복적인 육체노동이나 정형화된 업무가 기술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는다는 결과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논문에서는 반대 방향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임금이 높은 직업일수록 대체로 노출도가 높게 나타난 것이죠. 논문은 이것이 머신러닝 전반에 대한 기존 노출도 평가와 반대되는 결과라고 설명합니다.
어떤 능력이 노출도와 관련 있는지도 살펴봤습니다. 프로그래밍과 글쓰기 능력에 많이 기대는 직업은 노출도와 양의 관계를 보였고, 과학과 비판적 사고 능력에 크게 기대는 직업은 음의 관계를 보였습니다. 또 그 직업에 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준비가 어려울수록 노출도가 약하게 높아지는 경향도 나타났습니다.
산업별로 보면 정보를 처리하는 산업은 노출도가 높았고, 제조업·농업·광업은 낮았습니다. 기존의 다른 기술 노출 지표들과 비교해 보니 대체로 같은 방향을 가리켰지만, 반복적인 육체노동이나 로봇 노출 지표와는 오히려 반대 방향이었습니다. 그리고 기존 지표들과 임금을 모두 넣어도 이 논문의 노출도 차이 가운데 28~40%는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LLM이 이전의 자동화 기술과는 다른 종류의 일에 닿는다는 점을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시계를 채워 주는 도구들
앞의 숫자에서 보았듯, 이 논문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보완 기술입니다. 범용 LLM은 사실과 다른 내용을 말하거나, 편향을 담거나, 개인정보 문제를 일으킬 수 있어서 그대로는 믿고 맡기기 어려운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특정 분야에 맞춘 도구와 작업 흐름, 사람이 중간에서 확인하는 구조를 더하면 이런 약점을 상당 부분 보완할 수 있습니다.
논문은 두 가지 예를 듭니다. 하나는 변호사를 위한 법률 조사 도구 케이스텍스트(Casetext)로, 문서 검색과 요약 기술을 붙여서 GPT-4가 판례에 대해 틀린 내용을 말할 위험을 줄였습니다. 다른 하나는 코딩 도우미 깃허브 코파일럿(GitHub Copilot)으로, 코드를 제안하면 개발자가 자기 판단으로 받아들이거나 거절합니다. 연구진은 이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GPT-4는 혼자서는 지금이 몇 시인지 모르지만, 손목시계를 하나 채워 주는 건 어렵지 않다는 것이죠.
GPT는 GPT입니다
논문의 제목은 일종의 말장난입니다. 앞의 GPT는 생성형 사전학습 트랜스포머(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 뒤의 GPT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범용 기술(General-Purpose Technology)을 뜻합니다. 인쇄술이나 증기기관처럼 범용 기술로 불리는 것들에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널리 퍼지고, 시간이 지나며 계속 개선되고, 그 기술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혁신을 줄줄이 낳는다는 점입니다.
연구진은 LLM이 이 세 가지를 모두 보인다고 주장합니다. 영향이 대부분의 직업에 걸쳐 넓게 나타나고, 모델 능력은 꾸준히 좋아지고 있으며, 그 위에 만든 도구들이 영향을 크게 키운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오늘 당장 새로운 능력 개발을 멈춘다고 해도 경제적 영향은 계속 커질 것이라고 봤습니다. 이미 있는 모델을 일에 맞게 끼워 넣는 도구들이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범용 기술의 영향은 수십 년에 걸쳐 나타나고, 그 잠재력을 제대로 끌어내려면 업무 절차와 조직을 새로 짜는 데 큰 비용과 시간이 듭니다. 연구진도 "GPT가 범용 기술이라면 앞으로의 흐름을 정책 결정자가 예측하고 규제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새로운 종류의 일이 생겨날 가능성도 함께 열려 있다는 뜻입니다.
이 논문을 읽을 때 기억할 점
이 논문은 업무 단위로 AI의 영향을 보는 시야를 넓혔지만, 결과를 그대로 옮기기 전에 몇 가지를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시점입니다. 이 논문은 2023년 3월에 처음 공개되었고, 업무를 분류할 당시 기준으로 삼은 모델은 GPT-3.5 계열이었습니다. 그 뒤 모델 능력과 도구 생태계는 크게 달라졌으니, 숫자 자체보다는 업무 단위로 보는 방법과 보완 기술의 중요성이라는 관점을 가져가는 편이 좋습니다.
다음은 범위입니다. 분석 대상은 미국 노동시장이고, 미국의 직업 분류와 업무 목록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산업 구조와 직무 구성이 다른 한국에 같은 숫자를 바로 대입하기는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연구의 성격입니다. 저자 네 명 중 세 명이 LLM을 만드는 오픈AI 소속이고, 노출 판단의 상당 부분을 GPT-4가 맡았습니다. 무엇보다 연구진 스스로 이 연구가 잰 것은 기술적으로 가능한 정도일 뿐 실제로 일어날 일에 대한 예측이 아니라는 점을 거듭 강조합니다.
"AI가 내 일자리를 가져갈까?"라는 질문을 이 논문의 방식으로 바꾸면 이렇게 됩니다. "내 업무 가운데 어떤 것이 AI로 빨라질 수 있고, 어떤 것은 여전히 내 판단과 경험이 필요한가?" 일자리 전체의 운명을 걱정하기보다 내 일을 업무 단위로 나눠 보는 것, 그리고 어떤 도구가 그 업무를 바꿀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AI 시대를 차분하게 준비하는 첫걸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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